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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소통 능력향상을 위한 교육방법

by rolypoly애쑤니 2022.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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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읽지도 쓰지도 않는다!

기술 발달로 인해 우리 삶 속에서는 이전보다 더 편리함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들은 오히려 사람 간의 소통 단절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점점 인간관계에서의 갈등도 증가하고 있으며 서로 간의 오해나 불신 또한 깊어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원활한 소통 능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한 읽기 쓰기 교육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하다. 본 글에서는 현재 한국사회 내 만연해 있는 읽기 쓰기 실태 및 문제점 그리고 해결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업무 처리가 가능해졌다. 은행 업무에서부터 쇼핑, 결제, 예약, 예매, 배달 서비스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뿐만 아니라 SNS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온라인상에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해외에 있는 친구와도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듯 채팅을 나눌 수 있으니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정작 학교 현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학생들은 교과서 내용을 달달 외우며 주입식 교육에만 몰두하고 있다. 물론 당장 눈앞의 성적을 올리기엔 이만한 방법이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창의력과 사고력 증진 측면에선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했고 머지않아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될 예정이다. 바야흐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미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만큼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얄팍한 읽기를 만들어낸 것은 구글로 대표되는 디지털 미디어다. 니컬러스 카는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라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그런 글을 읽게 되면 우리의 뇌 구조 자체가 바뀐다고 주장한다. 뇌과학자들은 비판하지만, 가소성을 가진 뇌가 미디어라는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량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성인 월평균 0.8권이라는 통계수치는 알지 못해도 피부로 느낀다. 이는 우리나라 일만은 아니다. 독서량의 감소는 흔히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 때문으로 간주된다. 스벤 버커츠(Sven Birkerts, 1994)의 『구텐베르크 애가(The Gutenberg Elegies)』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독서량이 줄어든다고 한탄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인터넷 읽기는 늘어난다고 하는데, 과연 인터넷 읽기는 어떠한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의 저자인 니컬러스 카(Nicholas Carr, 2011)는 책의 제목처럼 인터넷이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얄팍한 사람들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한발 더 나간다. 짧은 글들의 연결로 구성된 하이퍼텍스트는 인터넷의 글, 정확히는 월드와이드웹 글의 구조와 이용 양태를 극명히 보여 준다. 글은 카드 조각처럼 파편화되어 있고 우리는 하나의 글에 침잠하지 못하고 짧은 그런 글을 점프하듯이 옮겨 다닌다.

 

그렇다면 쓰는 것은 어떠한가. 펜으로 쓰든 타이핑을 하든, 양도 줄어들었지만 글의 외양도 많이 바뀐 것 같다.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글의 길이가 짧아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등장한 글쓰기를 차례로 보면, 홈페이지에 이어 블로그를 거쳐 최근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과 같은 SNS에 이르기까지 글의 길이는 지속적으로 짧아져 왔다. 심지어 트위터는 영문 140자, 한글 70자밖에 쓰지 못한다! 글의 길이가 짧아진 것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한편으로 속도의 논리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도 빨라져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모바일 미디어가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틈새시간 미디어’를 활용해 긴 글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짧은 글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지만 짧은 글만 쓰이고 소비되는 것이 문제다.

디지털 시대의 읽기와 쓰기

정보가 하이퍼텍스트 구조로 조직화될 경우, 하이퍼텍스트 글쓰기는 일종의 텍스트 네트워크 구축 작업이 된다. 하이퍼텍스트 소설의 저작 행위에서 보듯, 전체적인 내용의 구성도 비선형적인 이야기 구조로 구상해야 하고, 단위 텍스트들을 네트워크 구조로 짜내기 위해 단위 텍스트들을 링크를 통해 어떻게 연결 지을지도 구상해야 한다. 이런 하이퍼텍스트를 읽는 것은 갈림길에서 해야 할 선택과 같이 주어진 링크를 선택해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의 하이퍼텍스트를 읽을 경우, 개별 이야기는 독자가 선택하는 길을 따라 매우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이퍼텍스트 읽기는 다선형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의 또 다른 특징은 텍스트의 범위가 링크에 의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독자의 링크 클릭이라는 행위에 의해 구현된다.

상호작용성이 고도화된 디지털 미디어의 경우, 독자에게 상호작용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변경 가능한 요소들을 텍스트 쓰기에서 마련해 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상호작용성의 결정 요인으로 간주되는 독자의 반응이 반영되는 속도(speed), 변경 가능한 속성의 수를 의미하는 범위(range), 독자의 반응이 텍스트의 변화로 치환되는 매핑(mapping) 등이 바로 상호작용적 글쓰기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속성들이다. 읽기 행위는 인터페이스와 텍스트가 제공하는 이러한 변경 가능한 요소들을 조작하는 것이 된다. 즉, 주어진 인터페이스의 어포던스(affordances)를 조작하는 것이 읽기 행위의 핵심이 된다. 조작성이 부각된다는 것은 전통적인 읽기에서 요구되는 몰입(immersion)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의 읽기가 얄팍하다는 니컬러스 카의 비판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하기도 한다.

디지털 미디어가 사회적 관계망을 구현하는 네트워크 미디어라는 점도 쓰기와 읽기 관습과 직결된다. 네트워크 미디어는 쓰기 측면에서 ‘협업적 글쓰기(collaborative writing/authoring)’라는 새로운 관습을 만들어 낸다. 과거에도 이런 관습이 있었지만,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 보듯, 집합 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의 구현이라고 할 만한 이런 협업적 글쓰기는 네트워크 미디어가 제공한 것이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새로운 읽기와 쓰기 관습을 형성해 왔다. 기록 미디어가 등장한 기원전 소크라테스 시대, 코덱스(codex)가 등장한 기원후 시점, 그리고 활판인쇄술이 등장한 15세기 등 변화의 시점에는 항상 읽기와 쓰기 관습의 변화 여부, 새로운 관습에 대한 평가와 인식 등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다. 데이비드 제이 볼터(David Jay Bolter, 2001)에 따르면, 활판인쇄술이 발명되고 나서도 과거의 채색서적 전통은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 이런 점에서 물질적, 도구적, 기술적 변화가 읽기와 쓰기 관습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관습의 등장이라는 변화에 주목하면서도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런 관습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서 제시한 문제에 대한 답은 읽기와 쓰기의 쇠락이라는 사회적 우려가 있다고는 해도 잠시 유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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